2008년 05월 12일
탄천 주변을 걷는 재미 중의 하나는 최근 들어 열심히 설치하고 있는 우레탄 보도의 폭신한 감각이 아니라 더러운 탄천 물이나마 보금자리로 삼아 날로 개체 수가 늘어나던 야생 오리였다.
탄천에는 누군가가 더 이상 집에서 기르기 힘들어지자 풀어 놓은 집 오리, 거위 등이 떼를 지어 어울렸는데 어느 해 겨울인가부터 야생 오리가 늘어나더니 살만한 곳이다 싶었는지 여름이 되어도 돌아가지 않고 사는 오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재작년, 작년에는 봄이면 한강에서 무리져 올라 오는 잉어 떼와 함께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오리 반, 고기 반이다 싶을만큼 그 숫자가 늘어났다.
오리가 늘어나자 왜가리도 많이 눈에 띄었고, 어느 날부터인가는 백로도 떼를 지어 날아들어 한꺼번에 수십마리가 겨울철 햇살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어느 날인가 야생 오리가 자취를 감추고 한 구석에 몰려 있던 집 오리, 거위 만이 눈에 띄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여름이 되어도 돌아가지 않던 오리 떼가 갑자기 야성을 찾아 떠나지는 않았으리라. 이렇게 갑자기 오리 떼가 사라진 것은 아마도 인간의 손길이 개입된 것 아닐까 싶다.
시나리오는 두 가지일 것 같다. 하나는 용인에 아파트가 마구잡이로 들어서면서 급속히 나빠진 탄천의 수질로 보아 오리 떼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최근에 급속히 번지는 조류독감에 겁을 먹은 행정당국이 날아다니며 조류독감을 퍼뜨릴 가능성이 높은 야생 오리떼를 포획한 것이다. 집 오리떼는 그냥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첫번째 시나리오는 그 근거가 빈약하다. 집오리가 야생 오리보다 독극물 혹은 오염에 강하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약하고 그 많은 오리떼가 일시에 떼죽음을 당했다면 그 흔적이 남아 있을 법도 한데 죽은 오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야생 오리떼를 포획했다는 이야기도 듣지는 못했다.
그 어느 시나리오가 맞는 것이든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건 분명하다.
최근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건 분당의 조그마한 하천인 탄천에서 야생오리가 사라진 일이 아니라 광우병이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 사는 고위 공무원들이 떼거리로 나와 미국산 소고기가 안전하다고 옹호해 주는 기괴한 풍경을 연출하더니, 협정서에 명백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대통령은 정부가 협정을 체결했지만 그 후 일은 국민에 달렸으니 싫으면 먹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설익은 자유 방임주의를 설파하기도 했다.
조류독감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가 질타의 대상이고, 광우병과 관련해서는 농림수산식품부가 뭇매를 맞고 있다. 하지만 두 사건은 개별 사안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식탁을 즐겁게 하기 위해 가축을 대량으로 사육하고 대량으로 도살하는 방식이 빚은 문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닭, 오리, 소, 돼지를 집단으로 몰아놓고 사육하다 집단으로 도살하는 모습이 아우슈비츠를 연상케 하는 건 육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 개인의 극단적 시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방식의 사육과 도축, 그리고 식습관이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건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는 오만한 사고 방식이 문제의 본질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임으로써 시작되었다는 광우병은 극단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재의 경제체제에 그 뿌리가 닿는다.
모두가 공멸할 시점까지 달려가야 직성이 풀릴 듯한 사회 시스템을 구성하고 그 풍요로움에 만족하며 사는 방식이 만들어 낸 이런 문제들을 그저 지엽적인 현상으로만 보고 있는 우리의 무감각을 이제는 고쳐나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 by 바람부는날 | 2008/05/12 08:18 | 잡상 | 트랙백 | 덧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