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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들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대한 주한 미국 대사관의 평가를 포함한 위키리크스 문건이 공개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반기문 총장 본인보다 더 관심이 가는 내용은 말미에 실린 역대 대통령 3인에 대한 내용이다. 대통령들에 대한 기사 내용은 이렇다.

"한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 3명에 대한 당시 미 대사관의 평가도 공개됐다.

전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다혈질(hot-tempered)에 보수적이며 대다수의 정책적 이슈들에 대해 상당히 제한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기술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정치적 인물로 외교정책의 모든 방면에 능숙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졸 출신으로 국제무대에서는 신참이지만 강한 견해와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고 각각 평가했다."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어떤 걸까? 개개인의 평가가 같을 리 없지만 이들에 대한 평가 역시 같은 지면에 실린 박정희 동상에 관한 논란처럼 수십년 후까지도 평행선을 달려서는 곤란하다. 제3자에 의해 '상당히 제한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라고 평가 받는 대통령을 더 이상 갖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 선전에 의해 갈대처럼 흔들리지 않는 건전한 주권의식을 가진 시민층이 두터워져야 한다.

우린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을 가질 자세가 되어 있을까?

by 바람부는날 | 2011/05/01 07:41 | 세상을 보는 눈 | 트랙백 | 덧글(0)

나가수/위탄

오랫만에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방송시간을 기다려 보는 음악프로가 나와 많은 관심을 끈다. 그런데 무슨 일이나 그렇듯 사람들 관심이 많아지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그리고 나 역시 즐겨보던 끝에 실망을 더해서 아쉽다.

'나는 가수다'는 말할 것 없이 원칙을 훼손한 댓가를 치르고 있다. 공정을 국정 이슈로 삼아야 할만큼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서 모두가 바라는 건 납득할 수 있는 원칙을 정하고 그를 지켜가는 모습이다. 그런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편법을 만들 때 그 결과가 어떨지 예상하지 못한 PD나 가수의 단견이 정말 아쉽다... 좋은 프로그램이었는데...

'위대한 탄생'은 짝퉁 프로그램이라는 평을 들었어도 공중파의 힘을 만끽하며 승승장구해 왔는데 최근 들어 많이 삐걱거리는 모습이다. 그 원인은 말할 것 없이 주관 방송사의 모호한 방향성이다. 과연 이 프로그램이 가능성 있는 가수 재목을 선발하겠다는 건지 넘쳐 나는 entertainer를 하나 더 추가하겠다는 건지가 갈수록 불투명하다. 거기에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 심사위원의 의견은 거의 배제된 채 미처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최고의 가수를 정하는 인기투표를 통해 생존자를 정하는 무책임까지 더해져 뭐하자는 프로그램인지 모르게 되었다.

하긴... 재미 있자고 하는 프로그램에 내가 너무 민감한 건가?

by 바람부는날 | 2011/04/23 08:43 | 잡상 | 트랙백 | 덧글(0)

공인의 말

이 작은 땅 곳곳에 하나 둘 마구잡이로 들어서던 국제공항 짓기가 이젠 경쟁을 넘어서 사생결단으로 가고 있다. 단 며칠 후의 일도 생각하지 않고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 백지 부도수표를 긁어 대는 정치꾼들을 왜 사회 지도층으로 대우해 주는 건지...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왜 앞 뒤 돌아보지 않고 표를 던져 주고 그 약속의 허황함을 외면하고 내 것 내놓으라 아우성치는 건지...

당초에 표 욕심에 던진 무모한 약속을 더 탓해 무엇할까... 그나마 잘못된 것이었으니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는 고해성사를 하는 게 다행이긴 하다. 그런데 이렇게 잘못 가던 일이 막판에나마 바로 잡혀가는구나 했더니 또 다시 몇 몇 정치꾼들은 내일 하루 나만이라도 잘 살아야겠다는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꺼져가는 불에 기름을 다시 부어 사회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표를 던져 주고 머리에 띠 두르고 거리로 나서는 유권자들이 잘못이라면 가장 큰 잘못이지만, 하루이틀 정치하고 말 사람들이 아니라면 정치인들은 공인의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당신들의 말 한마디 손가락질 하나가 이 나라를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 놓고 있는지 제발 좀 생각해 보시란 말이다.

by 바람부는날 | 2011/04/01 08:19 | 세상을 보는 눈 | 트랙백 | 덧글(0)

너무나 다른 한국과 일본

사무실도 맡은 일도 두 차례나 바뀌다 보니 이 근처는 발걸음도 못했다... 가끔씩 들어와 봐야지 생각하면서도...

하필 돌아오는 때에 일본에 너무나 큰 참사가 있어 마음이 안스럽기 그지 없다. LA에서 공부하던 1994년에 6.8도의 대지진을 경험해 보았지만 이번 지진과 비교하면 그냥 몸풀기 정도였던 것 같다.

이번 지진으로 참화를 겪은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이런 때 자중해 마땅하지만 차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들이 있어 돌아온 첫날부터 한마디 하게 된다.

무엇보다 조 모 목사... 이런 사람을 목사라고 불러 주고 대접해야 주는 게 타당한지 모를만큼 몰상식해서 무시하고 싶지만 인류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게 그의 몫이라면 세상에서 퇴출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더 이상 이 사회를 오염시키지 못할 정도로는 응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극한에 다다른 편견과 이기주의가 목사라는 외양에 묻혀서 용서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는 그의 행태가 하루 이틀 된 것은 아니지만 이 사회의 이름으로 그에게는 건전한 제약이 가해지는 게 당연하다.

이번 사태를 보도하는 양국의 유력(?) 언론사들의 태도 또한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일본 침몰 등의 3류 소설같은 용어를 남발하는 우리 나라의 일부 신문들과 국가적인 차분한 대응을 중심으로 보도하는 일본 신문사 모두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는 덕목에서 벗어나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들의 태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누가 낫다고 비교할 가치도 없을만큼 우리 나라의 일부 언론은 천박하고 그 존재가치를 새삼 의심하게 한다. 제법 뛰어난 인재들을 선발한다는 집단이 어떻게 그토록 최소한의 자정 능력도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하루 이틀 사이의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손에 신문보다 더 치명적인 무기 조차 겁없이 맡겨 버리는 우리 사회의 몰염치함과 패거리 문화가 그들의 천박함을 조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시 한 번 이번 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고 부상한 분들의 쾌유와 엉망이 되어 버린 그 땅이 조속히 복구되기를 바란다.

by 바람부는날 | 2011/03/14 19:16 | 세상을 보는 눈 | 트랙백 | 덧글(1)

사는 방식

탄천 주변을 걷는 재미 중의 하나는 최근 들어 열심히 설치하고 있는 우레탄 보도의 폭신한 감각이 아니라 더러운 탄천 물이나마 보금자리로 삼아 날로 개체 수가 늘어나던 야생 오리였다.

탄천에는 누군가가 더 이상 집에서 기르기 힘들어지자 풀어 놓은 집 오리, 거위 등이 떼를 지어 어울렸는데 어느 해 겨울인가부터 야생 오리가 늘어나더니 살만한 곳이다 싶었는지 여름이 되어도 돌아가지 않고 사는 오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재작년, 작년에는 봄이면 한강에서 무리져 올라 오는 잉어 떼와 함께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오리 반, 고기 반이다 싶을만큼 그 숫자가 늘어났다.

오리가 늘어나자 왜가리도 많이 눈에 띄었고, 어느 날부터인가는 백로도 떼를 지어 날아들어 한꺼번에 수십마리가 겨울철 햇살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어느 날인가 야생 오리가 자취를 감추고 한 구석에 몰려 있던 집 오리, 거위 만이 눈에 띄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여름이 되어도 돌아가지 않던 오리 떼가 갑자기 야성을 찾아 떠나지는 않았으리라. 이렇게 갑자기 오리 떼가 사라진 것은 아마도 인간의 손길이 개입된 것 아닐까 싶다.

시나리오는 두 가지일 것 같다. 하나는 용인에 아파트가 마구잡이로 들어서면서 급속히 나빠진 탄천의 수질로 보아 오리 떼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최근에 급속히 번지는 조류독감에 겁을 먹은 행정당국이 날아다니며 조류독감을 퍼뜨릴 가능성이 높은 야생 오리떼를 포획한 것이다. 집 오리떼는 그냥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첫번째 시나리오는 그 근거가 빈약하다. 집오리가 야생 오리보다 독극물 혹은 오염에 강하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약하고 그 많은 오리떼가 일시에 떼죽음을 당했다면 그 흔적이 남아 있을 법도 한데 죽은 오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야생 오리떼를 포획했다는 이야기도 듣지는 못했다.

그 어느 시나리오가 맞는 것이든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건 분명하다.

최근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건 분당의 조그마한 하천인 탄천에서 야생오리가 사라진 일이 아니라 광우병이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 사는 고위 공무원들이 떼거리로 나와 미국산 소고기가 안전하다고 옹호해 주는 기괴한 풍경을 연출하더니, 협정서에 명백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대통령은 정부가 협정을 체결했지만 그 후 일은 국민에 달렸으니 싫으면 먹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설익은 자유 방임주의를 설파하기도 했다.

조류독감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가 질타의 대상이고, 광우병과 관련해서는 농림수산식품부가 뭇매를 맞고 있다. 하지만 두 사건은 개별 사안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식탁을 즐겁게 하기 위해 가축을 대량으로 사육하고 대량으로 도살하는 방식이 빚은 문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닭, 오리, 소, 돼지를 집단으로 몰아놓고 사육하다 집단으로 도살하는 모습이 아우슈비츠를 연상케 하는 건 육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 개인의 극단적 시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방식의 사육과 도축, 그리고 식습관이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건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는 오만한 사고 방식이 문제의 본질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임으로써 시작되었다는 광우병은 극단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재의 경제체제에 그 뿌리가 닿는다.

모두가 공멸할 시점까지 달려가야 직성이 풀릴 듯한 사회 시스템을 구성하고 그 풍요로움에 만족하며 사는 방식이 만들어 낸 이런 문제들을 그저 지엽적인 현상으로만 보고 있는 우리의 무감각을 이제는 고쳐나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by 바람부는날 | 2008/05/12 08:18 | 잡상 | 트랙백 | 덧글(0)

함께 산다는 것

요즘에는 남녀평등이란 말이 들어보기도 쉽지 않을만큼 진부한 얘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아들은 대학에 보내도 딸년을 뭐하러 대학에 보내냐는 게 우리 어른들의 상식이었다. 지금도 그 어른들은 손자는 귀해도 그 앞에 '외'자가 붙으면 그저 굴러 다니는 개똥보다 조금 나은 걸로 생각해 버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런데 그런 딸년들이 아들보다 낫더라는 게 여기저기서 입증되면서 우리 세대부터는 생각들이 많이 바뀐 모양이다. 스스럼 없이 딸이 낫다고들 하는 세상인 걸 보면. 우리 딸 아이는 그렇게 다감한 녀석이 못 되지만 나와 집사람을 비교해 보아도 딸이 훨씬 낫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혼자 계신 양가 어머니 중 딸을 셋이나 가진 장모님이 딸 하나 없는 우리 어머니보다 자식들에게 대접 받고 사시는 걸 보면 그렇다.

그래서인가 이제는 대부분 남녀 평등이라는 이야기를 입에 담지도 않는데... 왜 여러 가지 흠결로 도중에 낙마하는 공직자들은 흔하지도 않은 여성 공직자들 뿐인지 모르겠다. 못지 않게 자랑스런 흠결을 가진 남자 후보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장관이 되고 수석이 되어 행세하고 언론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 여성 후보들이나 공직자들은 어째 그렇게 집요한 공격의 대상이 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여성 고위공직자 비율을 자랑하는 우리 나라에서 왜 남자 공직자들에 비해 크지도 않은 잘못을 저지르고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 힘없이 쫓겨 나야 하는 건 여성들 뿐인지 알기 힘들고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공정하다는 언론 역시 그들만을 향해 칼날을 휘두르는지 알 수 없다.

이 세상은 아직도 여전히 남자들이 살아가기에 더 편하게 되어 있다. 함께 사는 것에 조금 더 너그러워지면 남자들 기득권은 조금 줄어들지 몰라도 분명히 우리 딸들이 지금처럼 군 제대자에게 가산점을 다시 주려는 시도에 대해 목소리를 조금은 낮추지 않을까? 그렇다고 흠결 있는 여성 공직자들을 눈감아 주지는 않겠지...

by 바람부는날 | 2008/04/27 23:41 | 세상을 보는 눈 | 트랙백 | 덧글(2)

역사를 읽지 않는 사람들

예상 그대로 총선이 끝나자 마자 미친 쇠고기들이 밀려 들어오게 되었다. 심지어는 광우병이 확인되더라도 계속 수입한다는 너그러운 조건으로... 그리고 부시C는 너그럽게 캠프 데이비드의 빗장을 열어 주었다. 뭐... 그런 것이다. 그리고 우리 농민들은 또 예상대로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아마 우리 농가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풀게 될 것이다.

서울 시민 대다수의 투표는 뉴타운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서울시장은 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후보자들의 거짓말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문지상에 거론되는 범법 당선자들은 특정집단 사람들 뿐이다...

삼성특검은 국가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줄 거라는 수많은 언론의 경고와 길거리 시위에 겁을 먹은 건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답안을 내 놓았다. 그래도 예전에는 밝히지 못했던 것들을 우리가 밝히지 않았냐며 떳떳해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과거 수십년 간의 신문 기사와 너무 똑같아서 새삼스레 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지를 궁금해할 필요 조차 없는 것이다. 아이에게 수시로 해 준 이야기가 있었다. 역사는 짧은 순간만을 볼 때 퇴보하는 것 같아도 전체적으로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그게 무색해진다.

역사를 읽지 않는 사람들을 탓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들은 무디어져 있고 건망증이 심할 뿐이라고 믿고 싶다.

by 바람부는날 | 2008/04/19 22:13 | 세상을 보는 눈 | 트랙백 | 덧글(0)

민주주의의 위기

총선이 끝나자 마자 정통 보수언론을 자처하는 한 일간지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간파하는 혜안을 과시하며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놀라운 정책대안까지 제시했다.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투표율은 현재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며 투표 불참자에게 금전적 불이익을 포함한 제재를 가하는 싱가포르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타운이 가져 올 장밋빛 미래라는 환상에 취해 여의도에서는 드물게 제대로 된 의정활동을 해 온 몇 안 되는 의원들을 추풍낙엽처럼 날려 버린 민도를 새삼스레 탓할 필요는 없다. 영수를 힘들게 한 녀석이라면 그 상대편이 자신들과 이념적으로 극단의 자리에서 대치해 왔다 하더라도 그를 도와 낙선시켜야 한다는 정치 의식과 그에 동조해 놀라운 기적을 보여 주는 국민의 뜻도 놀라울 게 없다.

그런 국민이 키워온 언론을 탓해 무엇할까마는 개발독재의 시대로 다시금 무한질주하고 있는 마비된 의식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키워온 뿌리라는 새로울 것도 없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by 바람부는날 | 2008/04/13 08:31 | 세상을 보는 눈 | 트랙백 | 덧글(0)

잔설

겨우내 게으름으로 이부자리를 빠져 나오지 못했던 휴일 아침을 바꾸어 보려 불곡산에 올랐다.

3월 들어 갑작스레 기온이 오른 탓에 겨울 등산복이 부담스러울만큼 따스한 날씨여서 벌써 양지 쪽 곳곳에는 솜털 입은 쑥 새싹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점점 빨라지는 봄이 새삼스럽다. 개나리가 필 날도 멀지 않았구만...

몇 달 간 산에 다니지 않다 보니 다리는 무겁고 숨은 가쁘고 산 아래쪽부터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그래도 오랫만에 보는 다람쥐, 그리 정겹지 않은 청설모가 뛰어 다니는 모습이 산에 오르는 즐거움을 새삼스레 일깨워 준다. 아직 새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분당으로 옮긴 지 10년이 되었는데 그간 불곡산도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등산로가 꾸준히 넓어졌다. 사람들이 그만큼 극성스러워져 이미 충분히 확보해 놓은 제 영역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조용히 산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조금 덜 돌아가려 나무와 풀의 영역을 밟아 자꾸만 새로운 길을 내고 있다. 이젠 입산금지라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입산금지와 같은 방식이 내키는 건 아니지만, 서울의 효창공원을 보면 무지한 인간에 대응하는 차선책일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60년대 초에 효창공원은 제법 휴식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만큼 괜찮은 곳이었다. 샘도 있고 수풀도 우거져서 메뚜기, 잠자리 떼를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황폐한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누가 그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지만 어느 날 갑작스레 효창공원은 출입금지 지역이 되었고 그 후 몇 년 동안 자연이 많이 복원되었다. 그 인근을 떠나온 지 벌써 20년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다시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많이 훼손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기대를 해 본다. 아무튼 불곡산도 더 망가지기 전에 등산로에 철책이라도 만들어 엄격히 통제를 하든, 아예 입산금지를 시키든 하는 게 그나마 훼손 정도를 줄이는 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산 정상에서 도로 오르던 길을 밟아 내려오는 지루함을 덜려고 골안사 쪽으로 내려 오는 게 최근의 습관인데 골안사 입구에 다다랐을 때 계곡 사이로 아직 남은 잔설이 눈에 띄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잊고 있었던 겨울의 모습이 아직도 조금 남아 있는 게 반가웠다. 어릴 적 잔설을 보면서 괜히 지나는 겨울에 마음이 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바쁜 세상사에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마음처럼 이번 겨울은 한 자락 아쉬움을 가지고 보내 드리자...  

by 바람부는날 | 2008/03/16 07:23 | 나의 작은 일상 | 트랙백 | 덧글(1)

마티즈 택시

요즘 들어 기아차의 모닝이 새롭게 뛰어들어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우리 나라 대표 경차는 역시 마티즈다. 한때 멋다리 없는 AtoZ라는 깡통차가 있기는 했지만 나름 멋을 부린 마티즈를 따를 순 없었다.

그렇더라도 마티즈를 보는 시선은 코너를 돌 때 한 손으로 짚고 돈다는 비아냥을 들었던 티코에 대한 것보다 그리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런 마티즈를 그들은 택시로 쓴다. 그것도 도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택시의 차종이 마티즈다. 한 때 세계 최강국의 자존심을 꺾을 줄 모르던 미국의 콧대를 꺾어 버린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여러 곳에 출장을 다녔지만 흔히들 가는 베트남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국과 인연이 꽤 깊은 땅이 베트남인 모양이다.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우리 선배들이 피를 뿌렸던 그 땅에 한동안 뜸하던 한국인의 발걸음이 어느 외국인보다도 많은 게 요즈음이라고 한다. 하노이 도심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호텔이 대우 호텔이라는 게 상징적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오늘을 말하지만 그 옆에 하노이 정도 1000년을 상징하는 건물로 베트남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60층이 넘는 건물을 짓기 시작한 손길 역시 한국인의 손길이라고 한다.

거리에 즐비한 LG, 삼성의 간판 뿐 아니라 왜 인기가 있는 건지 이해하기 쉽진 않지만 아무튼 비의 광고 입간판이 거리를 메우고 있는 걸 보면 이들의 한국에 대한 선망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고, 지나치는 노천 카페의 TV에 보이는 한국 드라마들이 그걸 재삼 확인시켜 준다.

시내 곳곳에서 성업 중인 발마사지 업소 손님의 대부분은 한국인이라고 하는데, 작년에 계림을 방문했을 때 한 교수님이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우리 역사에서 중국인들에게 발마사지를 받는 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중국과 한국이 세상의 흐름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국인에게 발마사지를 받는 때가 될 거라는 걱정이 든다는 이야기. 베트남 거리에서 베트남 사람들을 근거없는 우월감으로 대하고, 일본 식당에서 무례하도록 왁자지껄하고 게걸스럽게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밥을 먹으며, 공항에서는 '논'이라 부르는 원추형 밀집모자를 싹쓰리해서 사 가는 한국 관광객들을 보면서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우리의 정신이 부끄러웠다.

1000동에서 500,000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화폐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호치민의 초상화를 보면서 결코 강요되지 않은 국민적 존경심과 자긍심을 절로 불러 일으키는 정신적 국부가 없는 우리가, 손님의 눈을 속이며 미터기를 조작하는 택시 운전사와 그들이 핸들을 잡은 마티즈 택시만을 보고 이들을 우습게 여길 자격이 있는 건지 씁쓸한 베트남 출장이었다.

by 바람부는날 | 2008/03/13 23:38 | 나의 작은 일상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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